[조선일보 사설·칼럼] 이희옥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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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04
이희옥 원장 성균관대 정외과교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6번째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중 간에는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마다 한·중 FTA 타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등 정책적 신뢰를 확인하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으나 서로를 전략적으로 결박하는 것을 넘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조 체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중 간 외교·안보 현안을 거의 모두 제기하고 중국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놓고 국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사실 서방 국가의 지도자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참석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 끝에 참석을 결정한 것은 우선 연간 100만명에 달하는 인적 교류와 교역량 3000억달러를 목전에 둔 경제 관계가 있었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핵문제와 북한의 불확실성을 돌파하기 위해서도 중국의 지속적이고 건설적 역할이 필요했다. 이뿐만 아니라 치열한 한국 독립운동의 주무대였던 중국에서 양국이 이러한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더욱이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 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중국의 협력을 구하는 일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사안별로 한·중 관계를 한·미 관계와 분리해 접근한 것은 새로운 외교 실험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이 한반도 정책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상당 부분 불식했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야기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는 것을 재삼 강조했다. 이것은 북한의 도발 행위를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북한이 정권 수립일, 노동당 창건일 등을 계기로 벌일지 모르는 군사적 모험을 사전에 제어하는 효과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고 교착 상태의 한·일 관계를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풀어가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중국이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며 화답한 것도 성과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중 양국이 인식 차이를 보이면서 접점을 찾지 못했던 지역 전략에 대해서도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확인했다. 중국은 한국의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이 역내 신뢰와 협력 구축을 위한 매우 유용한 틀이라고 평가했고,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연계하기로 하면서 양국의 핵심 정책에 대한 협력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한·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일 관계, 남북 관계, 북·중 관계를 보는 거울이자 창이다. 중국도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고, 6자회담의 조기복귀론을 다시 제기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이 적극 호응해 온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좀 더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되었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는 법이고 완승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제로 중국도 전략적 차등화를 뚜렷이 하면서도 한·중 협력이 북한의 고립으로 비치지 않도록 관리하고자 할 것이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다양한 정상 외교에서 어떻게 반영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